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6/26/0200000000AKR201506...
한국전쟁 발발 사흘만인 1950년 6월28일 새벽, 유일하게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인 인도교(현 한강대교)가 폭파됐다. 다리를 건너던 4천여명 중 800여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서울 사수(死守)'를 약속한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가 6월27일 새벽 대전으로 떠난 뒤였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i/view.do?treeId=07031&level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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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0년 6월 28일 새벽, 당시 북한 인민군의 한강 이남 지역 진격을 막기 위해 국군 공병부대에 의해 폭파된 한강 인도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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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창식 대령의 사형이 집행된 14년 뒤 그의 부인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라 판단되어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렇지만 한강 인도교의 폭파를 명령한 상관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http://hankookilbo.com/v/d409c5f1a40a4cd2ac8867e9a54fe016
1950년 오늘(6월 28일) 한국군 공병대가 서울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를 폭파했다. 다리 위 피난민 등 시민 500~800여 명이 숨졌다.
일본 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이 내린 명령을 공병감 최창식 대령이 수행했다. 정말 채병덕의 명령인지는 불확실하다.
사죄는커녕 2015년 국가보훈처가 예산을 대고 독립기념관이 펴낸 청소년 교재용 책자 ‘6ㆍ25전쟁 현장 읽기’는 “6월 26일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 시민들의 이동 금지 명령을 하달하였으나 그 명령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고, 다시 말해 말을 안 들은 시민 탓이라고 기술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50699...
한강 다리 폭파, 이승만 책임 쏙 빠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8275...
이승만의 한강대교 폭파... 그런 일이 있었냐고?
폭파 작전은 기습적으로 감행됐다. 당시 한강대교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었다. 그래서 5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폭파와 함께 생명을 잃거나 한강에 수장됐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당시 시내에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음성이 계속해서 퍼져 나왔다는 것이다.
http://mleaders.asia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038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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